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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직한 술병이 은은한 조명 아래 고요히 놓여 있다.

    혹시 문경 호산춘이라는 전통주,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저는 몇 년 전, 서울에서 열린 한 전통주 시음회에서 이 술을 처음 만났는데,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더라고요. 사실 그 전까지는 이름만 들어봤지, 어떤 술인지는 전혀 상상도 못 했었거든요. 잔에 따라진 술은 맑고 투명하기보다는 손끝에 살짝 끈적임이 느껴질 정도로 진하고 농밀한 느낌이었어요. 알코올 도수가 18%로 꽤 높은 편인데도, 목 넘김은 놀랍도록 부드러웠고, 솔잎에서 오는 은은한 향이 과하지 않게 코끝을 감돌았죠. 과연 이렇게 독특한 매력을 가진 '호산춘'이라는 이름의 술은 어떤 정체를 가지고 있을까요? 그 깊은 역사와 맛의 비밀을 저와 함께 파헤쳐 보는 건 어떠세요?

    이름부터 특별한 '춘주(春酒)', 그 의미는?

    '춘주(春酒)'라는 이름, 혹시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문경 호산춘은 ‘술 주(酒)’자 대신 ‘봄 춘(春)’자를 쓰는 몇 안 되는 전통주 중 하나거든요. 여기서 춘주(春酒)란 옛부터 알코올 도수가 높고 맛이 담백하면서도 깊은 향을 지닌 최고급 술에 붙이던 애칭 같은 거예요. 저는 단순히 '최고급 술'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이 이름이 가진 깊은 뜻을 다 담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봄이 지닌 생명력과 풍요로움, 그리고 문경의 아름다운 산수(물과 산)가 어우러진 낭만적인 정서가 이 이름에 함께 녹아있지 않을까요?

    처음에는 '호리병 호(壺)'자를 쓴 호산춘(壺山春)으로 기록되기도 했지만, 점차 문경의 아름다운 풍경을 상징하는 '호수 호(湖)'자를 사용해서 지금의 호산춘(湖山春)으로 변경되었다고 해요. 이건 술이 담고 있는 지역의 정체성과 풍류를 더욱 강조하는 의미로 다가오더라고요. 문경시는 호산춘이 이런 지역 특색을 잘 담아낸 전통주로서, 쌀, 오미자, 사과 등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다양한 증류주 개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어요(출처: 영남일보).

    500년 종가에서 이어온 '가양주(家釀酒)'의 숨결

    문경 호산춘의 역사는 무려 5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해요. 조선 명재상 황희 정승의 증손인 황정 선생이 문경에 정착한 이후, 장수 황씨 사정공파 종가에서 대대로 이어져 온 가양주(家釀酒)로 추정되는데요, 가양주란 집에서 직접 빚어 마시던 술을 의미하며, 그 가문의 전통과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는 귀한 술을 뜻합니다. 현재는 장수 황씨 종가의 며느리 송일지 씨가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8호 기능보유자로서 그 명맥을 이어가고 계시더라고요(출처: 국가유산포털).

    이 술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5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어져 온 '살아있는 유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어요. 호산춘은 이양주(二釀酒) 방식으로 빚어지는데요, 이양주란 밑술과 덧술을 두 번에 걸쳐 빚는 제조 방식을 말합니다. 멥쌀로 밑술을 담그고, 찹쌀과 솔잎을 넣어 덧술을 하는 복잡하면서도 정성스러운 과정을 거치죠. 특히, 문경시 산북면 대하마을의 물을 새벽 0시에서 4시 사이에 길어와 끓여 식힌 후 사용해야 제 맛과 향을 낼 수 있다고 전해지는데, 이런 지역 특화된 비법들이 호산춘의 독특한 풍미를 만들어내는 거겠죠.

    호산춘 제조에 사용되는 솔잎은 단순한 향미 재료가 아니더라고요. 그 다층적인 역할은 참 놀라웠습니다.

    • 그윽한 향기: 솔잎 특유의 상쾌하고 그윽한 향이 술에 깊이를 더해줍니다.
    • 천연 방부제: 솔잎은 잡균의 번식을 막아주는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해서 술의 보존성을 높여주는 거죠.
    • 필터층 형성: 술을 짜내는 과정에서 술 찌꺼기와 엉켜 중요한 필터 층 역할을 수행하며 맑은 술을 얻는 데 기여하기도 합니다.

    이런 세심한 과정 하나하나가 500년 전통의 맛을 지켜내는 비결인 것 같아요. 1990년에는 교통부장관 추천으로 관광 토속주(土俗酒)로 지정되기도 했으니(출처: 지역N문화), 그 가치를 일찍이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죠. 토속주란 특정 지역의 재료와 전통 방식으로 빚어온 술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하여 보존하고 육성하는 술을 지칭하는 말이에요.

    끈적임 속 숨겨진 반전 매력, 제 경험은요?

    처음 문경 호산춘을 접했을 때 가장 놀랐던 점은 그 질감이었어요. 일반적인 청주나 약주처럼 맑고 가벼운 느낌이 아니었거든요. 오히려 살짝 점성이 느껴지는 끈적임이 있었는데, 높은 알코올 도수(18%) 때문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그런데 한 모금 마셔보니 그 농밀함이 전혀 거슬리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게 혀와 목을 감싸는 매력으로 다가왔어요. 솔직히 이 정도 도수면 흔히 '독하다'는 느낌을 받기 쉬운데, 호산춘은 거친 알코올 향 대신 은은한 솔잎 향과 함께 놀랍도록 깔끔한 마무리를 선사하더라고요.

    얼마 전 문경에 방문했을 때, 현지 식당에서 호산춘을 다시 만났는데, 그때는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고, 또 한편으로는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그 술 한 잔에 500년이라는 세월과 장수 황씨 종가의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마시니, 단순히 맛있는 술을 넘어선 무언가를 느끼는 경험이었습니다. 진한 질감과 높은 도수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움을 유지하는 건 아마도 정교한 이양주 방식과 솔잎의 역할 덕분이 아닐까 싶어요. 제게 호산춘은 첫인상의 의외성에서 시작해서 깊은 맛과 향, 그리고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매력을 발견하게 해 준 술이었습니다.

    호산춘의 미래, 전통과 현대 사이의 줄다리기

    문경 호산춘은 전통 가양주에서 현대적인 생산 시설을 갖춘 전통주로 성공적으로 전환하고 있는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2013년 문경시가 10억 원을 투입해서 제조 공장을 신축했고, 연간 1만 리터 이상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더 많은 사람이 이 귀한 술을 맛볼 수 있게 되었죠. 생산량 증대와 접근성 향상은 분명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현대화 과정 속에서 호산춘이 가진 고유한 '정서'와 '낭만적인 의미'가 훼손되지 않고 함께 계승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최고급 술'이라는 수식어만으로는 호산춘이 가진 깊고 서정적인 매력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을 거예요. 현대적인 생산 시설이 갖춰지더라도, 500년 역사가 담긴 손맛과 지역 특화된 비법, 그리고 '춘주'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풍류가 살아 숨 쉬는 방식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봅니다. 문경시가 한국 증류주 산지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호산춘이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문경의 역사와 문화를 대변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호산춘의 다음 500년을 결정할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요?

    문경 호산춘은 단순히 마시는 술을 넘어, 500년 역사의 향기와 문경의 자연, 그리고 사람의 정성이 빚어낸 문화유산 같아요. 처음에는 이름조차 낯설었지만, 그 독특한 맛과 이야기에 매료되어 어느새 저의 마음 한켠에 깊이 자리 잡았거든요. 혹시 아직 문경 호산춘을 경험해보지 못하셨다면, 기회가 될 때 꼭 한번 맛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 한 잔에 담긴 세월과 풍류를 느끼는 것은 분명 특별한 경험이 될 거예요. 전통주의 깊은 매력을 직접 느껴보시는 건 어떠세요?

    참고: http://ktns.co.kr/bbs/board.php?bo_table=B07&wr_id=98